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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7. 2022 가을과겨울
2022 년 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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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 전문 책방 이목구심서와 말술학교글 전고필 이목구심서 대표 사진 안갑주
가을이 깊어간다. 이 계절만 되면 이구동성으로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던 때가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도서 판매는 이제 뒤안길로 가는 사양사업이 되어가고 필요한 정보를 구글링이나 SNS를 통해 손쉽게 구하고 유통하고 공유하는 시대다. 흔히들 그런 정보의 정확성이나 신뢰도에 대해 의심하기 때문에 책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의 세대와 시류는 그와 상관치 않는다.그렇게 변할 줄 알면서도 나는 내 고향 담양에 책방을 열었다. 그것도 향토사만 전문으로 하는 책방을 마련했다. 20여 평의 공간으로 국수거리 뒷블럭이라 외진 곳은 아니지만, 막상 책방을 찾으려면 숨바꼭질하듯 골목을 뒤지거나 주인집 안마당을 가로질러 와야 한다. 당연히 이런 곳에 책방이 있을 턱이 없지, 라는 의심이 드는 순간 책방이 나타난다. 내가 의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공간을 찾다보니 어쩌면 이리도 적당히 은닉하고 또 슬쩍 내밀어 보는 그런 곳이 있을까 싶어졌고 재미질 것 같았다. 담양의 명소를 찾는 여행자들이 인생샷과 인증샷의 공간을 넘어 사람 사는 골목으로 흘러오길 바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런 시대 책방을 열어도 되나?책방의 구성은 도서 진열대과 동서남북을 차지하고 그 사이에 틈을 내서 커다란 평상을 두었다. 대나무의 고장이니 당연히 대나무 평상이고 거기 앉아 책도 보고,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는 자리로 배치한 것이다. 그리고 세평 정도의 사무공간을 두었다. 책방을 유지하려면 수익이 있어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글쓰기와 강연과 컨설팅이니 내게는 가장 유효한 공간이기도 하다. 책방 이름을 ‘이목구심서’로 한 것은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 선생이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가슴으로 느꼈던’ 것을 책으로 지어낸 책 이름에서 따왔다.책장에 꽂힌 책들은 학교 다니면서부터 관심을 가졌던 지역역사와 향토지리에 관련한 책과 자료들이다. 30여 년 동안 모아둔 것이 5천여 권 정도였다. 특히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전국의 문화원을 다니면서 받아 온 것과 간청하여 얻어 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작은 예산과 인원에 산더미 같은 일들에 파묻히는 문화원에서 나온 책들은 향토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 대부분이 비매품에 한정된 지역에서만 공유된다는 점이 한계다. 국가가 나서서 향토사 전문 도서관을 건립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어느 정부도 이런 데는 관심이 없다. 배곯아가면서 변변한 원고료나 협력자도 없이 지역의 돌멩이 하나 풀뿌리 하나에도 눈을 맞추는 향토사학자들의 위상은 늘 쓸쓸하고 고단하지만 그럼에도 그 맥이 끊기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그런 소중한 책이기에 나는 이 고산자 김정호 같은 분들의 노고를 나누고자 책방을 연 것이다. 그럼에도 광활한 책꽂이에 비해 책이 너무 부족했다.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면서 만난 경향 각지의 벗들에게 호소했다. 지역사 및 인문지리와 관련한 책을 보내 주고 더불어 책방의 활성화를 위해 내가 호명하면 성큼 담양으로 오시라는 것까지 주문했다. 호응은 일파만파로 번져서 5천여 권의 책이 그들의 손에 들리거나 택배를 통해 책꽂이에 채워졌다.
책에 담긴 지식을 공유하는 것구색이 갖춰졌으면 이제는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 내가 의도한 것은 책을 파는 것이 아니다. 책에 담긴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서 호명하면 오시라는 주문까지 함께 넣은 것이다. 공유의 방식을 찾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은 독서모임보다는 사람책에 주목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여기 있는 책을 구매하고자 하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책을 보는 이들은 트렌드나 자신의 관심사에 주목하지 지역사라든가 인문지리에 천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또한 책방주인으로서 이 분야에 몰입하는 사람들은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어렵게 구한 자료나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책들을 귀신같이 잘 알기 때문에 단박에 그런 책을 뽑아 가기 일쑤다. 고른 책을 안 판다고 하기에는 예의도 아니고 해서 속이 쓰라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기에 독서모임보다는 구술문자인 말술에 중점을 두었다. 책을 읽고 오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고, 자료를 준비하는 것도 번다한 일이 되니 그저 몸만 오라는 것이다.강연에 초대된 분들은 내가 깊이 아는 분들이 태반으로 문화현장에서 일하는 분이나 이와 관련한 저술활동을 하는 이들,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분들이 주를 이루도록 했다. 2020년 11월에 시작해서 한 달에 한 분씩만 초대하는 것이고 벌써 20번째 술연자를 초대하고 있다. 청강하는 이들은 딱히 대상을 정하지 않았다. 담양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중심에 두고 인접 지역에서 이런 분야에 갈증을 느끼는 어느 분이건 오시도록 열어 두었다. 어느새 단골이 된 분들은 담양에 다섯 분 정도와 광주에 다섯 분, 고창, 순천, 고흥, 장성, 나주 등에서 두서너 분씩 있다. 기본적으로 모이시는 분이 있기에 크게 홍보에 주력하지 않는다. 다만 페이스북을 통해 2주일 전에는 공지를 올린다. 이번에는 이런 주제로 어느 분이 오시니 참가비 3만원을 지참하시고 오시라는 공고문으로 가름한다. 어느 일간지와 방송에서 보도자료를 주면 어떻겠느냐, 라고 요청하길래 사양했다. 동네책방을 비롯한 일선의 책방들이 고군분투하는데 이분들에게 지면을 할애해 주시는 것이 더 소중할 것이라고 하면서 정중히 말씀드렸다. 대구 인문사회연구소의 신동호 소장으로부터 시작한 학교는 문학평론가인 고영직 선생, 글쓰는 세프인 박찬일 작가, 이원규 시인, 평화여행의 임영신 선생, 생태사진가인 오영상 작가, 영화감독인 권칠인 선생, 『말씀이 당신이다』 저자 김진해 교수, 섬학교 강제윤 시인, 아키비스트인 손동유 박사, 여행감독인 고재열 대표 등과 문화판의 현역인 권순석, 주성진, 안영정, 이상환 선생과 같은 분이 함께해 주셨다. 초대된 술연자는 야간 강의를 하고 참석자 중에 원하는 분과 더불어 숙소로 이동하여 강연 중에 못다 한 이야기를 술 한잔 곁들이며 함께 풀어나가는 것이 커리큘럼 안에 속해 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는 내가 직접 모시고 계절에 어울리는 담양의 이곳저곳을 답사하고 점심식사를 하고 배웅해 드리는 것이 전 과정이다.
지역에서 같이 경험을 나눠가는아실만한 분들이지만 이렇게 지근거리에서 대화하듯 이야기하고 자신의 지식과 실행경험을 풀어 놓고 다시 질의와 응답을 통해 복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마당이다. 그간 내가 발품을 팔고 품앗이를 했던 누적된 세월의 관계들을 다시 이어가며 지역에서 같이 경험을 나눠가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한 시대를 살아온 어느 누구의 삶도 결코 가볍지 않지만, 특히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관통해 온 내력들이 저술로 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사방이 지뢰밭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업무상 입을 다물어야 할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말술학교는 그런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무장과 봉인을 해제하는 토대 위에서 존재한다. 그렇게 그 분야에 관심있는 이들이 더욱 애정을 가지고 임하고 선험적 지식을 자기화하는 매개이자 인적교류의 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담양군이나 문화재단에서 예산 지원을 통해 더욱 확장하고 공식화하자는 것을 굳이 마다하고 책방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겠다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자연스러운 교감의 자리를 마련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것, 그 인적 토대 위에 이목구심서가 보유한 인문지리와 향토사 책이 보탬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말술학교와 책방은 지역에서 터무니를 만들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