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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7. 2022 가을과겨울
2022 년 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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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하게, 그리고 자유롭게글 김현승·안민영 사진 김혜원무더운 여름으로 접어드는 2022년 6월 23일 우리(김현승, 안민영)는 고창군 심원면 염전마을로 향했다. 고창에서 재도전하는 ‘치유문화도시 치유문화일상화 기반구축사업’에서 염전마을을 대상으로 하는 치유 콘텐츠 개발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로 생활하는 고창 읍내에서는 차로 30여 분 정도의 거리. 시원하게 펼쳐진 바닷가를 지나 구불구불 버려진 숲길 끝에 만나게 된 눈부시게 빛나는 순백의 소금밭 풍경. 고창 속 ‘은자(隱者)의 나라’ 염전마을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함께한 시간만큼 끈끈해지는염전마을에 처음 방문했을 무렵, 우리는 도시에서의 활동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치는 과정으로 완성되는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과연 장소의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하여 왔는가. 즉 우리의 활동이 특정 지역의 사회경제적 현실, 역사적 맥락, 문화적 감각 등과 맞닿아 있는 일상의 쟁점들에 침투하였는가. 다양한 주체가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기회를 만들어 왔는가. 다양한 사람들과 모이고-관계 맺는 과정이 우정과 신뢰를 통해 진행되어 왔는가 등의 자기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이러한 고민들은 자연스럽게 확장된 외부활동을 축소시키고 있었다.외부와의 연결을 조심스러워했던 마음은 염전마을도 같았다.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 소금 생산의 특수성은 오랜 시간 동안 염전마을을 독립된 공동체로 만들었다. 봄부터 가을, 바람과 태양이 좋은 날에만 생산되는 소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염전마을 주민들에게 염전은 물리적으로도 감각적으로도 삶의 중요한 경계로 작용되었다. 또한 염부들 대부분이 부모 세대로부터 대를 잇고 있다는 점, 부부가 생산의 전체를 온전히 책임지는 가족중심의 경제구조라는 점, 15가구로 이뤄진 작은 마을이라는 점 등은 소금생산 공동체인 염전마을의 특수성을 만들어오고 있었다.마을의 주민들과 처음 인사를 나누었던 날. 우리는 낯선 존재에 대한 어색함과 경계, 그리고 호기심과 환대의 마음을 동시에 경험했다.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서로의 언어가 선명하게 닿지 않는 시간들. ‘우리가 (아직은) 서로 다르구나’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염전마을을 처음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최대한 많은 시간을 염전마을에서 보내야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프로젝트가 진행된 60여 일 동안 매주 3일을 꼬박 염전마을에서 보내는 일정이 시작되었다. 마을의 (소금) 수매에 참여하고, 몇몇의 소금밭에서 채렴 일도 함께하고, 마을의 이름으로 고창갯벌축제에도 참여하면서 우리는 염전마을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 동네의 곳곳을 함께 누비고, 소금창고를 청소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재구성하고, 서로의 친구들을 소개해주면서 염전마을도 낯선 이를 친구로 맞이하는 경험을 쌓아갔다고 생각한다.외부에서 들어온 우리가 마을과 함께하는 과정은 쉽지않았다. 그간의 경험과 삶의 방식, 그리고 가치관과 취향 그 어떤 것도 같은 것이 없었다. 마을의 다정한 초대에도 ‘무엇인가 기여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기도 했고, 우리들의 친절이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하는 행위로 전달되었을 것 같기도 했다. 결국 프로젝트 기간 동안 우리가 좋아하는 소금빵을 소개할 수는 있었지만, 주민들과 함께 새로운 빵을 만들어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함께한 시간들이 쌓이니 알 수 없는 유대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을에서는 세세한 일상을 공유했던 얼굴들이 보이지 않으니 안부를 궁금해했고, 우리는 마을의 미래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이 마음과 관계를 정확하게는 규정할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관심이 가고, 흥미로운 일들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주민들과 단체티를 맞춰 입고 고창군-심원면을 대표하는 수산업대회에 참가한 날, 늘 쉽지 않던 마을 어르신의 “우리는 이제가족이지”라는 의미심장(?)한 선언이 우리의 변화된 관계를 어렴풋하게 느끼게 해주었던 것 같다.사실 염전마을이 마을 밖 친구를 맞이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염전 폐쇄의 위기에서 마을주민들은 안-밖 공동체와 함께 위기를 극복했다. 인접지역에 축사 건축이 결정되었을 때도(2017) (주)태양광발전소에서 염전 부지를 인수했을 때(2018)에도 염전의 위기를 극복한 힘은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주변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생산된 소금을 판매하지 못하는 위기에서 주민들은 소금생산을 멈추지 않고 삶의 터전을 지켜내겠다고 마음을 모았다. 그리고 마을의 위기와 소금 산업의 위기로부터 시작된 갈등의 과정을 마을 밖 친구들과 공유해왔다. 유년기를 같이 보낸 동네 친구들, 소금마을의 일상을 기록해줬던 방송국 직원들과 그 이야기를 통해 만나게 된 전국의 소비자들. 그리고 아름다운 소금밭을 구경하러 왔던 관광객, 사진가, 작가 등 염전마을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관계하지는 않지만, 그동안의 인연으로 이렇게 저렇게 얽히고설킨 다양한 친구들이 마을의 미래에 관심을 보였다.결국 염전마을을 2020년부터 2021년에는 (주)태양광발전소와 임시 계약하여 소금생산을 지속할 수 있었다. 또한 2021년에는 인근 지역의 축사 건축허가가처분 취소 행정소송에서 최종적으로 승소하며 2022년부터 고창군과 직접 계약을 통해 안정적으로 소금을 생산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는 고창의 염전마을에서 생산하는 소금이 개인의 경제활동(그리고 부의 축적)을 넘어서 시민들이 도시경제의 주체로서 존중받은 결과물이면서, 우정과 응원의 기운이 만들어낸 선물 같은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염전마을을 향한 다른 친구들에게도 우정의 가능성을 열어준 사건이 되었다. 마을을 응원했던 그간의 친구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염전생활은 막막했을지도 모른다.
친밀하지만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공동체우리는 염전마을의 우정 에너지가 점점 확장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긴 시간 동안 숨어있는 마을로 존재했던 염전마을은 우연한 계기로 만난 이런저런 인연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는 과정 중이다. 그리고 그런 환대의 마음이 목표지향적 관계를 벗어나 삶을 나누는 관계, 일상에 흥미를 만들고 (기회가 된다면) 함께 미래를 도모하는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염전마을에서 친밀하지만, 서로를 얽매이지 않는 관계의 새로운 공동체가 생겨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