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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 2021 가을2021년 12월

관점_에세이
렌즈를 통해
바라본 고창
배민호 작가

흑백필름에 고창에 대한 애정을 담는다. 카메라를 들고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며평범한 일상을 예술가의 애정어린 시선으로바라본다. 올해 고창문화관광재단에서 진행한마을 레지던시 지원 사업을 통해 고창에 머물게된 배민호 작가에게 고창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나는 오래된 소도시 묵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드넓은 동해바다가 있는 묵호는 어부들의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이젠 그 이야기도 한때가 되어버렸지만, 묵호는 나에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시선을 가지게 해준 곳이다.
어부들이 떠나고 난 뒤에 남겨진 공간, 그 공간에 서 있는 것을 좋아했다. 어부들이 떠나고시간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폐허가 된 공간은 과거 기억과 현재의 온도가 만나 완전히 다른공간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이해하고 느끼며 흑백필름 속에 담아둔다.
영광의 상처와 같은 빈 공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메시지를 얻고, 내 주변 일상의 단순한 사건이 강렬한 메시지를 주고, 일상이 특별한 순간으로 변하는 것에서 흥미를 느낀다. 남들에게는 하찮게 보일지 모를, 오랜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아마도그것은 그 공간에 나를 투영하고 교감하며, 또 다른 뉘앙스를 감지하는 순간의 기쁨이리라.
그 과정이 반복되면 내면의 성찰이 쌓이고 그 흔적이 흑백사진으로 나타날 거라 생각한다.
풀어도 끝이 없는 수수께끼를 하나둘 풀어나가듯이 오래된 카메라를 조작하여 노출값을찾고, 한 장의 흑백필름 속에 담는다. 이 과정이 세상과 사람을 들여다보고, 삶을 조금씩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과정과 닮았다.


홀로 세상을 기록하며 고독했던 카메라는 2016년 4월 고창에 닿았다. 내게 찬란한 봄날의 고창은 신흥교 위에서 오랜 시간 봄나물을 파시던, 따듯한 미소를 가진 아주머니로 기억된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잊히지 않던 감상은 다시 고창을 방문했을 때 신흥교를 먼저 찾게 했다. 아주머니 얼굴에 5년이라는 시간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그 시간의 흔적이 남은 변화가 나에게도 있었는지 돌이켜보게 되었다.
붉은 색소를 뿌려놓은 듯한 강렬한 색상의 고창 황토는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강원도 정선의 산골에서 흙을 밟고 흙장난하며 자랐기에, 흙이 주는 따뜻함은 어른이 된 지금도 선명한 감정으로 남아 있다. ‘고창 옹기’와 ‘고창막사발보존회’에서 황토를 오랜만에 느껴볼 수 있었다. 황토는 말랑말랑하면서도 조밀한 밀도를 가진, 언제나처럼 좋은 장난감이 되었다. 나의 장난감이 된 황토는 섬세한 손길 속에서 순식간에 영롱한 곡선을 가진 그릇이 되었다.
낯선 이방인에게는 먼저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게 요즘 시골 모습인데, 고창은 따뜻한 관심을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어디에서 왔냐”, “고창 어디에 사냐” 등 관심 어린 질문과 현지인들만 아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들려주었다. 고창에 더 오래 머문다면 그 이야기들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며, 더 많은 이야기와 더 많은 장소를 방문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어딜 가면 동네의 옛 모습부터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을까’ 하다가 마을 장터로 향했다. 큰 장터의 장날만큼은 아니더라도 면 단위 작은 장에도 나름의 활기가 있다. 굳이 무언가를 사고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남을 약속한 것처럼 장터에 모여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다. 장터는 물건이 아닌 삶을 교류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 대동약방을 운영했던 김낙언 아버님은 지나가는 외지인에게도 스스럼없이 장터 이야기를 해주셨다. 간직하고 계신 추억은 흑백사진처럼 남겨졌지만 그때를 떠올리는 아버님의 표정에는 애정이 어려 있었다.
나 역시 함께 고창을 애정 어린 시선을 바라보고, 또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그런 일련의과정들을 흑백필름 속에 기록하는 일들이 즐거움이자 기쁨이었다. 고창의 시간이 반짝 빛나는 내 삶의 한 컷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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