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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2021 여름2021년 09월

기록_기억에서 기록으로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재 황윤석’과
조선의 타임캡슐 ‘이재난고(頤齋亂藁)’

김진(고창군청 문화재전문위원)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재 황윤석
『이재난고』는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이 10세부터 63세로 작고하기 이틀 전까지 작성한 일기이자 평생의 연구 기록물이다. 이는 평생 본인이 직접보고, 듣고, 겪고, 공부한 다방면의 것들에 대해 상세히기록한 일기 또는 기사체로 쓴 개인 저작물이다.


이재 황윤석은 신경준, 위백규와 함께 18세기 호남지역의 3대 실학자로 꼽히는 인물로, 전라도 흥덕현구수동(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문학·경학·산학·사학·예학·의학·도학·지리·천문·역상·풍수·언어학·예술·정치·경제·사회·농·공·상 등을 전방위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하는 등 모르는 것이 없는백과전서파의 실학의 거목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매우 호기심이 강하고 진취적인 인물로, 18세기 조선으로 전해진 서양의 천문학과 사칙산법 등의 수학과 유클리드 기하학, 마테오리치의 산수역법, 삼각측량법등 신학문까지 접하고 익혔다. 따라서 그는 집요한 메모광이자 다방면의 학문을 두루 연구한 천재적 인물로,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것 같다.

조선의 타임캡슐, 『이재난고』
『이재난고』는 50책 6,000여 장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1984.9.20)로 지정됐다. 하지만 1821년 송헌진(宋獻鎭)이 기록한 〈행장(行狀)〉 등을 검토하면 황윤석은‘난고’ 등 100여 권 이상의 책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최근 고창군으로 기탁된 ‘난고’ 등을 검토한 결과, 62책 정도가 확인됐는데, 이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일기(日記)류 중 최대·최다의 방대한 사료로, 530만 자 분량 정도이다. 참고로, 정약용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가 500만 자 정도이지만, 『일성록(日省錄)』 초고를옮겨 베낀 것과 다른 이의 저작이 포함된 것을 제외하면 300만 자 내외에 불과하므로 이와 비교하면 『이재난고』가 엄청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이재난고』는 책마다 쓰기 시작한 연대와 끝낸 연대의 간지를 표지에 쓰고 ‘난고(亂藁)’라는 표제를 달았으며, 표지 우측 하단에 ‘共六十冊(공육십책)’이라 쓰여있어 후대에 모두 60책으로 재구성했음을 알 수 있다.책의 크기는 책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24×18cm내외이다.
『이재난고』는 일기의 기본적인 형식인 날짜와 날씨나 기후변화를 적고 하루 일상의 기록에서부터 풍흉(豐凶)과 함께 지진, 혜성, 일식, 월식 등 특이한 기상현상 등도 그때마다 적었다. 또한 독서 내용 및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고 보고 들은 내용과 편지, 여행 답사, 학문적 논설, 비망록 등을 본인의 관찰과 분석으로 기록했다.


따라서 『이재난고』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같은 관찬사서(官撰史書)등에서는 볼 수 없는 조선 후기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당시의 다양한 생활 모습을 풍부하게 담고 있어 당시의 사회·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조선시대 타임캡슐’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황윤석의 조선문화답사기 |
• 고창(흥덕)에서 서울까지 7일 내외로 다녔던 노정(路程: 580리)과 경승지나 유적지 등을 돌아본 여행일지 및 마을 지명 유래, 주변 현황, 식물, 광물, 기물 등까지도 한자와 한글로 나란히 적어놓았음.
| 18세기 조선뉘우스(사회문화 일상보고 및 특종 보고) |
• 당시 일상적인 생활 이야기와 가뭄, 홍수, 전염병 등의 재해 등 기록• 호랑이로 인한 피해 상황(충청도 진천과 경상도 상주)및 호랑이 사냥 관련 현상금(큰놈 100냥, 중간놈 50냥,작은놈 30냥)을 통해 하루에 20여 마리를 잡았다 등의 특종 보고
• ‘1768년(영조 44) 7월에 과거시험을 본 날 점심으로일행과 냉면을 시켜 먹은 내용을 적어놓아 ‘우리나라최초 배달음식 서비스’에 대해 기록을 남김.
• 주막 국밥값 3전, 고급 누비솜옷 4냥, 일반 누비솜옷 2냥, 말 한 마리 40냥과 말 대여료 100리마다1냥 7전, 전의현감 월급 15냥, 부풍향차보(차문화)당시 쌀값, 국밥, 고기 따위의 물가 변동까지도 기록하여 당시의 물가와 사회문제 등 조선 후기 생활문화에 대한 다양한 정보 제공 등
| 언어(어학)와 문화자료 |
• 한글, 중국어, 여진어, 일본어, 태국어 등을 연구하였고, 제주 방언까지도 정리
• 음악(악륜론: 樂律論,) 복식(족두리 등), 차문화(부풍향차보), 자명종(自鳴鐘) 등 연구·정리
| 우리나라 최초 고고학 발굴조사 보고서 작성 |
• 강원도 춘천의 선대 묘소를 이장할 때 이를 기록하고 고려 시대 묘제 분석까지 곁들임.

이와 같이, 『이재난고』는 매일 기록한 개인의 일기를뛰어넘어 당시의 사회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분야를 연구하고 기록한 연구 노트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고창군과 전라북도의 지원을 통해 황윤석과『이재난고』에 대한 학술대회 및 번역작업 등이 일부진행됐고, 『이재난고』와 관련한 연구논문은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150편 정도가 확인된다. 이렇듯 조선 시대 후기 문화를 밝히기 위해서는 이재 황윤석과 『이재난고』를 번역하고 검토해야만 가능한 것들이 많다.


보물,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 세계기록유산 가치
『이재난고』는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승격과 함께과학기술정보통신부(국립중앙과학관)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 및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가치가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 먼저 『이재난고』의전체 수량을 파악하고, ‘이재유고’, ‘이재속고’에 수록된 내용과 대조하여 각 자료를 파악하며, 해제(解題: 서적의 특징, 내용, 체재 등의 간단한 설명)하여 훗날 《이재전서(頤齋全書)》의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초고해상도 사진 촬영을 하여 누구나 쉽게접근하여 연구할 수 있도록 하고, 방대한 분량의 『이재난고』를 정본화하고 번역 지침을 우선적으로 마련하여 질적으로 우수하고 통일된 번역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재난고』와 관련된 국립중앙과학관, 한국천문연구원 등의 기관들과 MOU를 맺어 그 지식과 기술등을 연계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공립 연구기관 등을유치하여 다양한 학문 분야 연구자원과 인재들이 고창군으로 모이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또한 『이재난고』에 담긴 고창군 관련 콘텐츠를 정리하여문화행정에 활용하고, 국민의 관심 속에서 체계적으로보존되고 활용되어야 한다.
지난 4월 이재 황윤석의 8대 종손인 황병무 씨가 『이재난고』 58책과 『이재유고』 목판 100점을 고향인 고창군에 기탁·기증했다. 따라서 『이재난고』 관련 기획전시및 ‘황윤석 생가’(도민속문화재) 등의 유적과 유물을 정비하여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 이번 글은 ‘문화유산연구소 길’의 기호철 연구위원님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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