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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 2021 봄2021년 05월

그저 걷는 것만으로,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흙길, 산길, 숲길, 물길 어우러진 국가생태문화탐방로 노동저수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 지났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봄은 다시 찾아와, 온 세상을 옅은 녹음으로 뒤덮으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제 정말 봄이다. 고창에도 봄이 찾아들었다. 봄꽃이 피고 지고, 작은 이파리가 나뭇가지를 비집고 제 모습을 드러낸다. 고창읍성 주변으로는 붉은 철쭉이 찬란한 성벽을 이뤘다. 좋은 날씨 탓인지 봄이면 유난히 산책이 하고 싶어진다. 훈훈한 봄바람을 맞으며 자라나는 생명을 마주하는 기분은 오로지 봄에만 느낄 수 있다. 짙은 녹음도, 알록달록 단풍도, 하얀 설원도 좋지만 어쩐지 작은 생명이 틔워 낸 그 여린 빛이 유난히 가슴 설렌다. 봄소식을 듣기 위해 일부러 산책을 나선다.

읍성 따라 물길 따라 고창 산책 일번지고창에는 산책하기에 좋은 장소가 여럿 있지만, 개중에서 노동저수지도 한몫한다. 노동저수지는 1956년에 완공되어 농업용수로 사용해 왔다. 주진천으로 흘러드는 고창천 물줄기를 막아 건립한 저수지로 제방 크기는 체적 4만 4,800㎥, 길이 224m, 높이 20.56m이다. 고창읍 노동리와 덕산리 사이에 있어 두 마을을 연결하는 준계곡식 저수지이며, 문수산 북쪽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유입되어 수질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산책을 하다 보면 낚시하는 사람들을 더러 만날 수 있다. 노동저수지 인근 주민들에게는 산책이나 조깅하기에 좋은 장소로 손꼽히기도 한다. 특히 고창읍성과 가까이에 있어 조금 긴 시간을 들여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그러니 노동저수지 산책에 추천하고 싶은 코스도 단연 고창읍성에서 시작한다. 

읍성에서 바로 노동저수지로 연결되는 길이 있다. 읍성 입구에서 왼쪽 성곽 밖으로 난 샛길이 노동저수지로 향하는 길이다. 길 초입에 ‘김기석 강학당, 전불 5km’라고 적힌 작은 나무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올라가면 된다. 붉게 물든 철쭉과 성벽 사이로 걸으며 화창한 봄날을 한껏 만끽한다. 유난히 하늘이 맑았던지라 읍성을 찾은 사람이 꽤 있다. 카메라를 짊어지고 나와 풍경을 담는 사람도 있고, 읍성 안에서 대여해 주는 한복을 입고 거니는 이들도 보인다. 

  

길을 걷다 보면 철쭉 사이로 듬성듬성 놓인 작고 투박한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1년(1453)에 왜구 침략을 막기 위해 전라도민이 한데 모여 쌓은 자연석 성곽이다. 각 고을에서 모인 도민들이 지역별로 차근차근 성벽을 쌓아 나갔다. 각 지역민이 쌓은 성벽의 시작과 끝에 그 지역 이름을 새긴 비석을 세웠다. 마을과 지역 전체의 안정을 기원한 지역민들의 마음을 담은 표식인 셈이다. 

천천히 걸었음에도 계속해서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니 숨이 차고 땀이 흐른다. 15분 남짓한 시간이 흐르고 눈앞에 노동저수지가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낸다. 계단으로 이루어진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너른 잔디밭 풍경이 펼쳐진다. 노동저수지 바로 옆에 조성한 자연마당이다. 야트막하게 언덕진 잔디밭에는 이제 막 여린 잎을 틔운 나무들이 작은 그늘을 만들어 내고, 그 사이사이에 산책로와 벤치가 놓였다. 고요한 풍경을 눈에 담으며 읍성을 오르느라 가빠진 숨을 잠시 고른다. 

440미터 수상테크 7월초 개방
자연마당을 가로질러 내려오면 비로소 노동저수지 수상 탐방로 앞에 도착한다. 올해 조성 완료한 수상 탐방로는 ‘노동저수지 국가생태문화탐방로 조성사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고창읍 노동마을 앞에 자리한 매월정부터 자연마당 구간까지 약 440미터 길이를 수상데크로 연결했다. 현재 수상 탐방로는 완공이 되었지만, 정식 개방은 미룬 상태이다. 고창군청 문화복지환경국 생태환경과는 안전을 위해 산책로 입구 계단 보수와 CCTV 설치 등을 위해 잠시 폐쇄했다고 전했다. 공사는 5월에 진행할 예정이며 빠르면 6~7월에 개방할 계획이다. 수상 탐방로 폐쇄로 인해 지금 당장은 물길 산책이 어렵다는 게 조금 아쉽다. 


물길 위를 가로지르는 산책은 흙길과는 또 다른 감상을 건넨다. 수상 탐방로 중간에 서서 저수지를 바라보면, 저수지 주변을 감싼 숲이 안온하게 느껴진다. 저수지와 함께 한 품에 안긴 기분이다. 이른 아침에 이곳을 찾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흐릿하게 물안개가 내려앉아 마치 물감 번진 수채화 같은 모습일 것만 같다. 아직 보지 못한 여러 풍경이 왠지 모르게 눈에 선하다. 

산책로 끝자락엔 매월정이 있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노동저수지를 찾는 사람들에게 쉴 자리를 내어준 곳이다. 잠시 앉아 나무와 풀숲 너머로 보이는 저수지를 바라본다. 고창읍성에서 시작한 산책은 매월정에 다다라 끝이 났다. 계속해서 걸으며 많은 것들을 마주하고 눈에 담았다. 걷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무언가 잔뜩 해낸 기분이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생각을 하고, 주변 풍경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오늘 할 일을 다 한 듯 마음이 부푼다. 몸에 봄기운이 한껏 스몄다. 돌아가는 길이 가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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