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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 2021 봄2021년 05월


땅을 일구고 커피를 만듭니다

농부의 카페 '사랑새봄'

사계절 풍경을 담는 카페, 사랑새봄
싹 틔우길 준비하는 논 사이로 봄날의 하늘을 닮은 건물 두 채가 놓였다. 가파른 지붕을 얹은 건물은 애니메이션 <빨강머리앤>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시골풍경과도 곧잘 어울리는 아담한 두 건물은 고창으로 귀농귀촌한 김보미, 채새롬 부부가 설계하고 만들었다. 한쪽에서는 카페 ‘사랑새봄’을 운영하고, 다른 한 채는 부부와 아이의 보금자리이다. 건물 너머로 만개한 벚나무가 바람에 꽃잎을 흩날린다. 어쩐지 건물과 주변으로 펼쳐진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평일인데도 카페를 찾는 사람은 꾸준하다. 몇 해 전 이곳에 방문했던 한 손님이 찍은 ‘논 뷰(View)’ 사진으로 사랑새봄은 더욱 유명해졌다. 노랗게 익은 벼와 하늘색 카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봄이면 길가에 핀 벚꽃을 보러, 여름이면 푸르른 논을, 가을에는 잘 익은 벼를 보며 차 한 잔 마시러 오는 손님으로 늘 붐빈다. 날이 조금 흐렸는데도 공간은 사랑새봄을 찾은 몇몇 손님들의 대화소리로 가득 찼다.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김보미 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잘한 꽃 프린팅이 들어간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조곤조곤한 말투로 음료 주문을 받는다. 그의 모습이 이곳 분위기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 

                 

보미 씨 입맛대로 취향대로 꾸민 공간은 그가 입은 귀여운 원피스와 분위기가 닮았다. 원목과 라탄 소재를 기본으로 하고 알록달록한 색감의 소품들로 포인트를 주었다. 포근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에 손님들은 너도나도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 공간 곳곳에는 작은 그림도 몇 점 있다. 보미 씨가 그린 그림도 있고, 카페에 들른 손님이 테이크아웃 잔에 그려 선물한 그림도 전시해 두었다. 이곳 풍경이 담긴 그림에서 그린 이의 애정이 묻어난다. 

“원래 혼자 일을 해왔던지라 카페 일을 하는 게 저에게는 너무 어려웠어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주문을 받는 게 이상하게 부끄럽기도 했고요. 서비스업이 안 맞는다고 생각할 정도 걱정이나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제 조금은 익숙해진 것 같아요.”

보미 씨의 본래 직업은 그림책 작가다. 프리랜서로 일해 대부분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이 익숙했는데, 고창에 내려와 카페를 열면서부터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게 됐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라 적응이 어려웠지만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줬다. 카페를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여전히 손님을 대하는 일은 어색하고 쑥스럽지만 전보다는 익숙하다. 사랑새봄을 운영하며 처음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배워 나간다는 보미 씨. 새로운 지역에서 가족과 함께, 사랑새봄을 찾아주는 손님들과 함께하며 인생을 단련하고 있다. 

“카페를 운영하고 가족을 챙기면서 제 일도 하려니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종종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더라고요. 하지만 이렇게 매일매일을 잘 채워 가며 세월을 먹는 게 내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보다는 삶을 아름답게 하는 욕구로,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소로 유지하고 싶어요.” 

급하지 않게 천천히 내린 뿌리
고창에 먼저 정착한 건 남편 새롬 씨다.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 새롬 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고창에 내려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새롬 씨는 회사 다니는 게 재미없다는 생각을 할 즈음에 농사를 고민하게 됐다. 혼자 먹고 살기에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회사를 다니며 용산에서 귀농 교육을 받았다.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난생처음 귀농을 꿈꾸며 조금씩 준비해 나갔다. 

“고창에 내려온 게 2014년도예요. 원래는 임실에서 살아 보려고 집을 알아봤는데 마땅한 집이 없더라고요. 집 구하는 걸 포기하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고창에 들렀는데 너무 마음에 드는 집이 있는 거예요. 그날 바로 계약을 해 버렸어요. 성송면 괴치마을에 있는 집이었는데, 옛날에 면장이 지은 집이라고 하더라고요. 한옥이고 튼튼하게 지어서 이만한 곳이 없겠다 싶었어요.”

먼저 내려온 새롬 씨를 따라 보미 씨도 고창에 뿌리를 내렸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보미 씨에게 귀촌을 선택하는 건 오히려 더 쉬웠다. 아무것도 모르니 그저 재밌을 것 같은 생각만 하고 먼저 내려와 있는 남편을 따라 무작정 내려왔다. 어릴 때부터 꿈꿨던 전원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부푼 꿈을 안은 채 말이다. 보미 씨보다 2년 일찍 귀촌한 새롬 씨는 시골살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했으면 했지만, 보미 씨는 선택에 주저함이 없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모든 게 설레고 즐거웠다. 고창에 기반을 마련하고 보미 씨가 하고 싶은 일과 새롬씨가 하고 싶던 농사를 지으며 오순도순 가정을 꾸릴 생각에 기뻤다. 그러나 가족,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외로움이 커졌다. 무엇보다 도시에서는 생각도 못한 시골문화가 너무도 낯설었다. 아무렇지 않게 벌컥벌컥 문을 열거나, 도움을 주면 바로 보답을 하는 문화도 이해하고 몸에 익히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아내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그리고 매일 아침 문 앞에 수북이 쌓인 상추도 처음에는 잘못 두고 가셨나 싶었죠. 치우면 다음 날 또 쌓이고 그랬어요(웃음). 제 직업이 프로그래머였다 보니까 기계를 고치는 일을 어렵지 않게 하거든요. 몇 번 어르신들 TV를 고쳐드렸는데, 그 보답으로 상추나 다른 채소를 주시는 거였어요. 좀 지나 그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죠.”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기에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될지라도 마음으로 마을 어르신들의 행동과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한다. 두 사람이 결혼한 직후, 마을주민들과 가진 식사 자리에서 주민들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큼지막한 옛날 만 원권이 든 봉투였다. 꼬깃꼬깃 주름지고 오래된 지폐가 든 봉투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두 사람에게 더없이 큰 힘이 되었다. 부부는 다른 시도를 위해 괴치마을을 떠나 이곳 월산리로 이사했지만, 그곳에서의 경험과 주민들과의 교류가 두 사람에게 좋은 토대가 되었다. 

“우리 가족이 고창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확실한 계획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조금씩 농사를 짓긴 하지만 아직은 다양한 농사를 지으며 제게 맞는 작물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고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 이곳으로 이사했어요. 당장 농사로 돈을 벌겠다는 욕심보다는 조금씩 다양한 것을 해 보면서 지속적인 수입원을 찾을 예정이에요. 올해는 녹비작물을 심어 땅을 기름지게 만들고 경관과 먹을거리 둘 다 충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 보려고요.”

농부의 카페, 사랑새봄
•전북 고창군 고창읍 월산길 57
•운영 시간: 11:00 ~ 21:00(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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